붓다(Buddha, 佛陀 / BC 6세기 ~ 7세기 추정) 혹은 부처, 석가모니, 싯다르타
붓다, 부처, 석가모니, 혹은 싯다르타는 샤카공화국(현재 네팔의 남쪽 국경 근처)의 슈도 다나 왕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인간의 삶이 태어남, 늙음, 질병, 죽음, 즉 생로병사를 통한 환생의 고통임을 깨닫고서 이를 벗어나기 위해 29세에 출가하였습니다. 처음에 그는 다른 수행자들의 방법을 따르며 수행을 진행했지만, 그것은 무의미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결국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명상을 수행하여 35세에 깨달음과 철학을 얻고 부처가 되었습니다. 이후 인도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선교와 깨달음을 추구하다가 쿠시나가르에서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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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철학과 생애
붓다 탄생
기원전 623년 5월 정월대보름, 현재 네팔의 인도 국경에 위치한 카필라바투의 룸비니 공원에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적 스승이 될 운명의 고귀한 왕자가 탄생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귀족 석가 가문의 숫도다나(Suddhodana) 왕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마하 마야(MahāMāyā) 여왕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는 그가 태어난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났고, 그녀의 여동생이자 왕과 결혼한 마하 파자파티 고타미(Mahā Pajāpati Gotami)가 그를 입양하고 자신의 친아들 난다(Nanda)를 간호사에게 맡겼습니다. 이 저명한 왕자의 탄생에 사람들은 크게 기뻐했습니다. 칼라데발라(Kāladevala)라고도 알려진 아시타(Asita)라는 높은 영적 성취를 이룬 수행자가 이 소식에 특히 기뻐했으며, 왕의 가정교사로서 왕의 아기를 보기 위해 궁전을 방문했습니다. 왕은 예상치 못한 방문에 영광을 느끼며 그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아이를 데려갔으나, 놀랍게도 아이의 다리는 돌아서 수행자의 헝클어진 자물쇠 위에 얹혀 있었습니다. 그 즉시 수행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초자연적인 비전으로 아이의 위대한 미래를 내다보고, 두 손을 맞잡고 인사했습니다. 왕인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위대한 수행자는 처음에는 미소를 지었으나 다음에는 슬퍼졌습니다. 착잡하고 복합적인 감정에 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왕자는 결국 부처이자 붓다, 즉 깨달음을 얻은 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미소를 지었고, 이전에 죽고 무색계(Arūpaloka)에 다시 태어났기에, 깨달은 자의 뛰어난 지혜로 이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슬펐습니다.”
석가모니 명명식
왕자가 태어난 지 5일이 되는 날, 그는 ‘소원 성취'라는 뜻인 싯다르타(Siddhattha)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의 성은 고타마(Gotama)였습니다. 고대 인도 관습에 따라서 명명식을 위해 많은 박식한 브라만들이 궁전에 초대되었습니다. 그중에는 뛰어난 8명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아이의 특징을 조사한 뒤, 그들 중 일곱 명은 각자 두 손가락을 치켜들고서, 보편적인 군주 혹은 부처가 될 수도 있다는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지혜가 뛰어난 막내 콘단냐(Kondañña)는 이마의 털이 변한 것을 보고, 한 손가락만 들어 올리며 자신 있게 선언했습니다. “왕자는 반드시 세상에서 물러나 부처가 될 것입니다.” 한국에선 석가모니로도 유명합니다.
싯다르타의 첫 정신적 경험, 쟁기질 축제
싯다르타의 어린 시절에 매우 놀라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후에 진리철학을 찾는 과정에서 깨달음의 열쇠가 될 전례 없는 정신적 경험이었습니다. 왕은 농업을 장려하기 위해서 쟁기질 축제를 마련했습니다. 귀족과 평민 모두가 좋은 복장을 차려입고서 축제에 참여하는, 그야말로 모두의 축제이자 큰 행사였습니다. 정해진 날이 되자 왕과 그의 신하들은 어린 왕자와 유모들을 데리고 들판으로 나갔습니다. 외로운 장미 사과나무 그늘에 차양을 두고 캐노피가 있는 소파를 두어, 그곳에 아이와 아이를 보살필 유모를 남겨두고서 왕은 쟁기질 축제에 참석했습니다. 이윽고 축제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한창 흥에 겨운 유모들은 멋진 광경을 보기 위해 왕자 곁에서 점점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축제의 기쁨과 환희와는 완전히 대조적으로 장미 사과나무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조용하고 고요했습니다. 명상에 도움이 되는 모든 조건 아래, 나이는 어리나 총명한 그는, 날숨에 집중하는 가장 중요한 호흡을 위한 수행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들숨에서, 순간 그에게 사마디(Samādhi)라고 알려진 한 가지 마음의 집중을 얻게 되며, 드디어 그는 첫 번째 선정(황홀경)을 계발했습니다. 이때, 유모들은 문득 자신의 의무를 깨닫고는 축제를 저버리고 서둘러 아이 곁으로 달려갔으나,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깊은 명상에 빠진 아이의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급히 달려가 명상하고 있는 아이를 보고는, “내 사랑하는 아들아, 이것이 나의 두 번째 경배다”라며 경의를 표했습니다.
교육
왕실의 자녀인 싯다르타 왕자의 세부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왕자가 될 수 있는 교육을 받았을 것입니다. 전사 종족의 후손으로서 그는 전쟁 기술에 관련된 특별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붓다 부처님 석가모니 고타마 싯다르타 철학과 생애2에서 계속-
붓다 부처님 석가모니 싯다르타 철학과 생애 2 - 동시대 붕어빵
*붓다 부처님 석가모니 고타마 싯다르타의 철학과 생애 1은 아래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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